[현장] '과로사 의혹' 런베뮤, 료 이사 갑질 폭로도 나왔다…CCTV 감시·시말서 강요

이준현 기자 / 기사승인 : 2025-11-03 08: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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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 매각 앞두고 인천점 강행 개점, 4일 후 청년 과로사
실적 압박에 인력 충원 대신 혹사
'직원은 오브제' 감성 철학 뒤 SPC삼립 2.6배 산재
런던베이글뮤지엄과 아티스트베이커리 브랜드를 창업한 료(본명 이효정)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간 '료의 생각없는 생각'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감성 베이커리'로 유명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실제로는 직원들을 '오브제'처럼 취급했다는 전 직원들의 충격적인 폭로가 나왔다.

폭로에 따르면 이효정(활동명 료) 대표는근무자의 허리라인이 보이도록 선반을 설계했고 CCTV 감시, 잦은 시말서 강요는 물론, '저기 반바지', '야' 같은 인격 모독적 호칭도 견뎌야 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문화가 최근 주 80시간 넘게 일하다 숨진 26세 직원 정효원 씨의 비극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 "오늘 밥 못 먹었어"...14개월간 네 지점 전전한 끝

지난 7월 16일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 주임 정효원(26) 씨가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정효원 씨의 사망 전날인 지난 15일, 그가 연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는 "오늘 밥 못 먹으러 가서 계속 일하는 중"이었다.

유족이 교통카드 이용 내역과 대화 기록으로 재구성한 결과, 이날 그는 오전 8시 58분 출근해 밤 11시 54분에 퇴근했다. 약 15시간을 제대로 된 식사 없이 일했다.

사망 직전 일주일간 노동시간은 80시간 12분에 달했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이 과로사 인정 기준으로 삼는 급성·단기·만성 과로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수치다. 사망 전 12주 동안의 주 평균 노동시간도 60시간을 넘어섰다.

정 씨는 지난해 5월 입사 후 14개월 동안 네 곳의 매장을 옮겨 다니며 오픈 준비를 담당했다.

55평 규모 인천점은 하루 6000여 개의 베이글이 팔리는 대형 매장이지만, 관리자급 직원은 3명뿐이었다. 유족에 따르면 그는 직원 채용과 교육, 근무 스케줄 작성, 발주와 비품 구매, 매장 업무를 병행했다. 하루 택배 200박스 정리, 금속 차단봉 140개를 옮기는 고강도 육체노동도 도맡았다.

하지만 회사는 정 씨의 과로사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입사 후 13개월간 평균 주당 근로시간이 44.1시간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과로사 인과관계를 따질 때 법적·의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망 직전 특정 기간의 노동 강도이지, 입사 전체 기간의 평균치가 아니다.

객관적 증거인 출퇴근 기록조차 없다는 점도 의문이다. 회사는 지문 인식기가 정 씨 사망 시기에 맞춰 오작동했다고 주장했다.

회사 고위급 임원은 정 씨 사망 2주 후 유족에게 "과로사로 무리하게 산재를 신청한다면 진실을 알고 있는 직원들이 과로사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밝히겠다"며 "굉장히 부도덕해 보인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유족 측 대리인이 공인노무사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야 회사 태도가 돌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 매장. (사진=연합뉴스)


◇ 3년간 산재 63건...SPC삼립 2.6배 '사고 공화국'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학영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런던베이글뮤지엄 사업장에서 신청된 산재는 63건이며, 신청 건 모두가 승인됐다.

연도별로는 2022년 1건, 2023년 12건, 2024년 29건, 2025년 9월 기준 21건으로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산재 유형별로는 사고 재해가 60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출퇴근 재해 2건, 근골격계 질환 재해 1건이 승인됐다.

특히 지난해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SPC삼립의 2024년 산재 승인 건수는 11건이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같은 기간 29건으로 SPC삼립보다 2.6배 이상 많았다. 직원 수를 고려한 재해율은 식료품 제조업 평균(0.99%)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

이러한 고위험 노동 환경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불법적인 고용 관행이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본사 소속 직원처럼 여러 지점을 오가며 일하는 노동자들과 각 지점별로 3개월 단위 '쪼개기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퇴직금 지급과 정규직 전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불법 행위다.

유족이 공개한 근로계약서에는 노동자 서명조차 없었다. 계약서는 급여 체계를 통해 주당 최소 54시간 근무를 전제하고 있어, 법정 최대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을 처음부터 위반했다.
 

10월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앞에서 정의당 관계자들이 청년 노동자 과로사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매각 대금 받으려면 실적 유지해야"

정효원 씨의 죽음 배경에는 2000억 원 규모 매각을 둘러싼 '언아웃의 덫'이 있다.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런던베이글뮤지엄 운영사 엘비엠은 지난해부터 매각을 추진했다.

당초 상각전영업이익(EBITDA) 11배 수준인 3000억 원대 매각을 희망했지만, 지난해 EBITDA가 271억 원, 마진율이 34%에 달했음에도 시장은 1500억 원 수준이 적정가라고 평가했다.

결국 협상 끝에 지난 6월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와 2000억 원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핵심은 계약 조건에 포함된 '언아웃' 조항이다.

언아웃은 매각 후 일정 실적을 달성하면 매도인에게 추가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경우 매각 대금 절반 이상을 선지급하고, 나머지는 올해 실적 달성 여부에 따라 내년 지급하는 구조로 짜여졌다.

이 구조는 매도 측에게 단기 실적 극대화라는 강력한 압박을 가한다. 인건비를 포함한 판매관리비는 EBITDA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다. 매각 계약 후에도 추가 채용을 통해 인건비가 늘면 EBITDA가 줄어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결국 잔여 매각 대금을 받지 못할 위험이 생긴다.

바로 이 언아웃 압박 속에서 비극이 발생했다. 매각 계약 체결 직후인 12일,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인천점을 강행 개점했다.

정효원 씨는 이 매장 준비를 담당하다 개점 4일 후인 16일 숨졌다.

언아웃의 덫은 사망 후에도 작동했다.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런던베이글뮤지엄 경영진은 7월 말 JKL파트너스에 정 씨 사망 사건에 대해 "잘 해결됐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과 산재 여부를 두고 갈등이 이어지던 상황이었지만, 추가 매각 대금을 받기 위해 사고를 축소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결합을 승인했고, 8월 말 1차 납입이 이뤄졌다.
 

0월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앞에서 정의당 관계자들이 청년 노동자 과로사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직원은 오브제"…'감성' 뒤에 숨은 CCTV와 인격 모독

앞서 런던베이글뮤지엄 창업자 료 이사는 "직원은 가장 아름다운 오브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한 전직 직원은 "우리는 사람이 아닌 매장을 빛내줄 오브제였다"고 토로했다. 창업자의 '감성 철학'은 현장에서 잔인한 현실로 변질됐다.

직원들을 통제하는 징벌적인 문화도 드러났다. 한 전 직원은 "간단한 실수도 시말서를 써야 했다"며 "고객이 쇼핑백 요청했는데 포스기에 안 찍어서, 출근 첫날 베이글 이름이 영어라 실수해서 시말서를 썼다"고 밝혔다.

심지어 "직원이 실수하면 CCTV로 확인 후 어떤 직원인지 알아내서 시말서를 쓰게 했다"며 "숨진 직원도 아마 CCTV로 찍혔을 것"이라고 전했다.

창업자 료 이사에 대한 증언은 이러한 '오브제' 발언의 배경을 짐작게 한다. 한 전 직원은 료 이사가 브랜드 교육에서 "'커피 내리는 바에서 컵을 꼭 손 안 닿는 선반에 두는데, 근무자들 허리라인이 보이도록 설계한 것'이라더라"라고 폭로했다.

또한 "본부장은 이름 대신 '저기 반바지', '저기 노랑머리', '야', '너' 이런 식으로 불렀다"고 토로해, 직원을 '오브제'로 대하는 인격 모독적 조직 문화를 재확인시켰다.

논란이 확산되자 전국 독립서점들은 이 대표의 저서 '료의 생각 없는 생각' 표지에 "산재 신청이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 부도덕한 것"이라는 항의문을 적어 전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장관으로서 미처 예방하지 못한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같은 달 29일부터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과 본사에 대한 기획 근로감독에 착수했으며, 법 위반 확인 시 전국 7개 지점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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