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내부통제_SPC]②간판만 화려한 컴플라이언스…경영진 의중 앞엔 '독립적 경고' 없었다

문선정 기자 / 기사승인 : 2026-06-01 08: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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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 취소보다 중요한 것…'사전 검토'는 왜 없었나
관성이 된 내부거래, 견제하지 못하는 사외이사
겉만 화려한 컴플라이언스 조직, '독립적 경고'의 부재

화려한 안전경영 선포식과 수백 건의 시정 조치 발표 뒤에서도 현장의 기계는 멈추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SPC 제빵공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산업재해는 "위험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당연한 원칙이 현장의 생산성 압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알파경제>는 규정집 속에만 갇혀 있는 기업 내부통제의 실효성 문제를 현장의 목소리와 구조적 한계를 통해 3편의 분석 기사로 자세히 짚어봤다. [편집자주]

① 반복된 안전 선언, 현장 생산라인은 왜 멈추지 못했나

② 반복된 내부거래 논란, 이사회는 왜 작동하지 못했나
③ 반복된 노무 리스크, 준법체계는 왜 작동하지 않았나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문선정 기자] 지난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는 SPC그룹 계열사들의 거래 구조를 문제 삼아 총 647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위는 SPC삼립이 그룹 계열사 거래 과정에서 중간 유통 단계 역할을 하며 총수 일가에 유리한 이익 구조가 형성됐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SPC 계열사들은 2011년 4월부터 2019년 4월까지 SPC삼립에 약 414억 원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를 이른바 “통행세 구조”라고 불렀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핵심은 SPC삼립이 그룹 계열사 거래 과정에 개입하면서 총수 일가 지배력 유지와 승계에 유리한 구조가 형성됐고, 정상적인 경쟁 절차 없이 특정 계열사에 이익이 집중됐다는 점이었다. SPC는 즉각 반발하며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2026년 5월 25일자 [흔들리는 내부통제_SPC]①반복된 안전 선언, 현장 생산라인은 왜 멈추지 못했나 참고기사>


그리고 4년 뒤인 2024년 6월, 대법원은 공정위가 SPC 계열사들에 부과한 647억 원 규모 과징금을 전액 취소했다. 재판부는 SPC삼립이 거래 과정에서 실질적 역할 없이 이익을 취득했다는 공정위의 주장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고, 공정위가 적용한 정상가격 산정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부 밀가루 거래에 대해서는 SPC삼립에 상당한 경제적 이익이 제공된 측면이 있다고 보아 시정명령 일부는 유지했다.

이 판결을 통해 공정위 논리가 상당 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수년간 이어진 거래 구조와 대규모 규제 리스크 자체가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사진=연합뉴스)


◇ 과징금 취소보다 중요한 것…'사전 검토'는 왜 없었나

내부통제 관점에서는 사후적으로 과징금이 유지됐는지 취소됐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애초에 그룹 내부에서 이런 거래 구조가 어떤 리스크를 가질 수 있는지 충분히 검토됐는가에 있다.

공정위 조사와 수백억 원 규모 과징금, 장기간 행정소송, 대법원 판단까지 이어질 정도의 중요한 이슈였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는 거래 구조와 가격 결정 방식, 계열사 간 이해상충 가능성, 총수 일가 지배구조와의 연결성 등이 사전적으로 충분히 점검됐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PC삼립이 공시한 2021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감사위원회와 ESG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나, 내부거래위원회와 리스크관리위원회, 보상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기재했다. 최고경영자 승계정책 역시 “없음”으로 공시됐다.

물론 법적으로 모든 회사가 내부거래위원회나 리스크관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SPC 사례처럼 계열사 간 거래 규모가 크고, 거래 구조가 총수 일가 지배구조와 연결돼 있다는 의심을 장기간 받아온 경우에는 일반적인 수준보다 더 높은 내부 견제 기능이 요구될 수 있다.

특히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규제는 실제 위법성 판단 이전 단계에서도 기업 평판과 투자자 신뢰, 주가, 규제 리스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거래 구조 자체를 독립적으로 검토하는 절차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 관성이 된 내부거래, 견제하지 못하는 사외이사

문제는 이런 검토 기능이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작동했는가다. 계열사 거래가 장기간 반복되면 조직 내부에서는 이를 위험 거래로 보기보다는 관행적 운영 방식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총수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강한 기업집단일수록 이러한 관행은 더 강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내부통제 실패는 익숙해진 구조를 충분히 다시 들여다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외이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 대기업 지배구조에서는 정보와 의사결정 권한이 그룹 경영진과 핵심 실무라인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사외이사는 제한된 자료와 시간 내에서 안건을 검토해야 하고, 복잡한 계열사 거래 구조 전체를 완전히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내부거래가 오랜 기간 유지되면 조직 내부에서는 리스크 인식보다 관성이 더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한치호 경제평론가 겸 행정학 박사는 알파경제에 “SPC 사례 역시 이런 구조적 한계와 완전히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 2021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보면 SPC삼립은 상법상 준법지원인을 선임하고 있다고 공시했다”면서 “법무실장이 준법지원인을 맡아 준법통제기준 준수 여부를 이사회에 보고하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는 그룹 내 약 30명 규모의 법무조직과 약 15명 규모의 컴플라이언스 조직도 운영 중이라고 했다”면서 “윤리경영위원회와 내부 신고 채널인 ‘SPC Hot-Line’ 운영 내용도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 겉만 화려한 컴플라이언스 조직, '독립적 경고'의 부재

문서로만 보면 준법체계가 상당히 정교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중요한 부분은 이 조직들이 그룹 차원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사안에서도 독립적으로 경고를 낼 수 있었는지 여부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발간한 CG 리뷰에 실린 「준법지원인제도 도입의 정당성과 개선방향」(김이수, 2012)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언급된다. 해당 연구는 상법상 준법지원인 제도가 마련되었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독립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거나, 이사회·감사위원회와의 관계가 불명확해 실질적 견제 기능이 제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준법지원인이 법무라인 안에 위치하는 구조에서는 그룹 전체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사안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SPC 사례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대규모 공정거래 규제 리스크가 장기간 이어졌고, 공정위 조사와 수백억 원 과징금, 장기 행정소송까지 진행됐지만, 내부적으로 거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했다는 흔적은 뚜렷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 진정한 내부통제…경영진 의중과 충돌할 때도 작동하는 힘

SPC 사례는 한국 기업 내부통제의 취약한 단면을 보여준다. 내부통제는 단순히 법 위반 여부를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다. 거래 구조가 외부 투자자와 시장, 규제기관 시각에서 충분히 설명 가능한지, 특정 계열사나 총수 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될 가능성은 없는지,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와 평판에 부담이 되지 않는지를 조직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검토하는 기능까지 포함돼야 한다.

그리고 그 검토는 기존 관행이나 경영진 의중과 충돌하더라도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대규모 규제 리스크가 현실화된 이후 대응에 나서는 것과, 그 이전 단계에서 구조 자체를 점검하고 조정하는 것은 내부통제 수준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알파경제 문선정 기자(moonsj@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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