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유류 공급 차질도 없는데 폭등" 질타
공정위, 정유 4사 가격 담합 혐의 포착…현장 조사 착수
![]() |
|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 = 이준현 기자] 중동 전쟁 발발 직후, 국내 정유 4사가 발 빠르게 석유 공급가를 인상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유가 상승기에는 즉각 가격을 올리면서도 하락기에는 '비쌀 때 들여온 재고'를 핑계로 가격 인하를 미루는 정유업계의 오랜 관행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반사회적 악행'이라며 강도 높게 질타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주요 정유 4사의 석유제품 가격 담합 혐의를 포착해 전격적인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 전쟁 열흘, 유조선 미도착…공급가는 이미 올라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면전이 발발하자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보통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지난달 26일 리터당 1692.08원에서 3월 10일 리터당 1900원을 넘어섰다. 경유 가격 역시 1931원까지 오르며 휘발유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9일 장중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2022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 인상의 속도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쟁이 발발한 후 열흘 정도 됐는데 유조선이 아직 한국에 도착도 하지 않았다"며 "전쟁 발발하자마자 기름값을 올린 것은 폭력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전쟁으로 인한 공급 불안 때문에 주유소와 소비자의 선제적 수요가 폭증했고, 물량 확보 경쟁이 도매가 상승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 |
| 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동상황대응본부 회의에서 정유업계 관계자들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반복되는 '재고 핑계'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가 아닌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공급가를 산정한다. 이 가격을 통상 2~4주 이동평균으로 계산해 반영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가격 반영 원칙이 유가 등락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유가 상승기에는 이동평균을 기다리지 않고 즉각 가격을 올리면서, 하락기에는 "비싸게 들여온 재고가 남아 있다"는 논리로 인하를 미뤄왔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일 정유 4사와 만난 자리에서 "정유사들이 국제 유가 상승을 하루 이틀 만에 국내 가격에 반영하는 반면 가격 하락은 늦게 반영된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있다"고 직접 지적했다.
같은 날 산자위에서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통 국제유가 반영이 2~3주 걸려야 하는데 굉장히 빠르게 기름값을 올리면서 국가적 위기에서 초과이윤·초과마진을 가져가는 행태"라며 "국회 차원에서 횡재세 논의를 바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유소협회는 가격 상승의 1차 원인을 정유사 공급가 인상에서 찾는다. 협회에 따르면 석유제품 가격 중 유류세 비중이 50~60%에 달하고, 유류세를 포함한 정유사 공급가를 뺀 주유소 유통비용 비중은 전체의 4~6%에 불과하다.
반면 정유사 일각에서는 공급가 산정이 싱가포르 시장가에 연동되는 구조라 임의로 폭리를 취하기 어렵다는 항변도 나온다.
![]() |
|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 대통령 '반사회적 악행' 질타…공정위, 정유 4사 담합 혐의 포착 현장조사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유류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폭등했다"며 석유류 최고가격 지정 검토를 지시했다.
다음 날인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한층 수위를 높였다. 이 대통령은 "기름값 바가지처럼 공동체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부당 폭리를 취하려는 반사회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아주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SNS를 통해 "공동체를 해하는 폭리 요금은 근절해야 한다"며 "상식과 통념에 맞는 수준으로 가격이 결정될 수 있도록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SK에너지·GS칼텍스·S-OIL·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주요 정유 4사의 석유제품 가격 담합 혐의를 포착하고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정유사들이 이를 빌미로 폭리를 취했는지 집중적으로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 |
| 8일 인천 시내의 한 주유소 앞에 휘발유 매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
◇ 2011년·2022년에도 같은 논란…이번엔 달라질까
위기 때마다 '기름값 급등→담합 의혹→정부 압박→한시 인하→구조 방치'의 흐름은 낯설지 않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정유사를 압박해 일시적으로 기름값을 낮춘 뒤 알뜰주유소를 도입했다. 2022~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공급 위기 당시에는 횡재세 도입 논의가 불붙었다가 흐지부지됐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유가 비대칭' 현상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여야가 이례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이 "기름값 인상은 폭력"이라고 비판하고, 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횡재세를 즉각 논의하자고 촉구했다. 공정위 현장조사라는 강수도 더해졌다.
그러나 근본 해법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남는다. 가격 결정 구조의 투명성, 유류세 인하 여부, 횡재세 도입 논의 모두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 대통령은 "담합 부당이익, 그 이상 반환하게 될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재확인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와 최고가격제 시행 여부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오랜 기간 되풀이돼 온 비대칭 가격 구조가 이번 조사로 실제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