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미필적 고의 살인' 경고 통했나…박상신 DL이앤씨 대표, 진해신항 사망사고에 발빠른 사과

이준현 기자 / 기사승인 : 2025-11-19 08: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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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산재 직보' 지시 3개월 만에 터진 사고
사고 당일 즉각 사과·작업중단…이례적 신속 대응
박상신 DL이앤씨 대표가 14일 서울 중구 직업능력심사평가원에서 열린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건설사 간담회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DL이앤씨 진해신항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박상신 대표는 당일 즉각 사과문을 발표하고 유사 현장의 작업까지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이앤씨에서 발생한 9번째 사망 사고이자, 10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대표가 직접 신속한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산재 직보' 지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사고 당일 발빠른 즉각 사과

19일 DL이앤씨 및 관계기관에 따르면 17일 오전 8시 39분 경남 창원시 진해신항 남측방파호안 2공구 현장에서 하청업체 근로자가 작업 중 바다로 추락해 숨을 거뒀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직후 근로감독관을 현장에 투입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DL이앤씨의 대응은 이례적으로 빨랐다. 박상신 대표는 사고 발생 불과 몇 시간 만에 본인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배포했다. 박 대표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시공사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해당 현장의 모든 작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뿐 아니라 유사 공종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까지 자발적 중단 조치가 내려졌다. 과거 8건의 사망 사고 당시에는 이토록 신속하게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와 전면 작업 중단 조치가 이뤄진 전례가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이앤씨에서 발생한 9번째 사망 사고지만, 박 대표의 대응은 전임자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민한 대응이 단순한 안전 의식 제고가 아닌, 정치적 압박에 따른 전략적 선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대통령의 '산재 직보' 지시가 만든 압박

박상신 대표의 신속한 사과 배경을 이해하려면, 사고 발생 3개월 전인 지난 8월 대통령실의 기류 변화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9일 휴가 복귀 첫 지시사항으로 "모든 산재 사망 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전날 의정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50대 노동자 추락 사망 사고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당시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정상황실을 통한 공유 체계는 유지하되 대통령에게 좀 더 빠르게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라는 것"이라며 "언론 보도를 통해 사고를 인지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올해에만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의 사례를 언급하며 강력히 질타한 바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1월 김해, 4월 광명과 대구에 이어 7월 28일 함양-창녕 고속도로 현장 60대 노동자 사망 사고까지 연이은 악재가 겹친 상황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 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경고했다.

건설면허 취소와 공공입찰 금지 등 가능한 모든 제재 방안 검토도 지시했다. 과거 산업재해가 고용노동부 수사와 검찰 기소라는 사법적 절차의 영역이었다면, 대통령의 직보 지시는 이 모든 사망 사고를 '정무적 사안'으로 격상시킨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8건 사고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까지 DL이앤씨 현장에서는 8건의 사고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2년 3월 서울 종로구 현장의 이탈 드럼 충격 사고를 시작으로 4월 과천 굴착기 끼임, 8월 안양 펌프카 사고(2명 사망), 10월 광주 크레인 추락 사고 등이 잇따랐다.

이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타 대형 건설사들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DL이앤씨는 '중처법 시행 이후 최다 사망자 발생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망한 10명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거나 일용직, 혹은 이주노동자였다. 이는 위험한 작업을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2023년 8월, 8번째 사망자가 발생하자 고용노동부는 본사와 현장 사무실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이후 특별감독 결과 61개 현장에서 총 209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으며, 이 중 19건은 안전난간 미설치 등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 될 수 있는 중대 위반사항이었다.

반면 당시 경영책임자였던 마창민 전 대표는 단 한 차례도 기소되지 않았다.

노동계의 강력한 처벌 촉구에도 검찰은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마 전 대표는 2024년 3월 연임 확정 일주일 만에 돌연 사임했다. 업계에서는 잇따른 인명사고 리스크가 실질적인 경질 원인이라 해석했다.
 

DL이앤씨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DL이앤씨 고(故) 강보경 노동자 산재 사망 1주기 검찰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신속한 사과, 실질적 변화일까

경영진 교체 후 DL이앤씨는 과도기를 겪었다. 2024년 5월 선임된 서영재 대표가 두 달 만에 물러나고, 7월 주택 사업 전문가인 박상신 본부장이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취임 1년 3개월여 만에 발생한 사망 사고 앞에서, 박 대표는 검찰과 대통령실에 "나는 전임자와 다르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노동계는 보여주기식 사과가 아닌 진정성 있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등은 DL이앤씨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이들은 이번에도 사과 뒤에 숨어 실질적인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사태가 반복될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청인 DL이앤씨에서 하도급에 대한 적격 심사를 제대로 했다면 중대재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용노동부는 재해 사망자가 발생한 업체가 어떻게 하도급으로 공사에 참여하게 됐는지와 현장 위험 관리 현황 등을 철저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련 법의 한계 등으로 안전관리 자격에 미달하는 업체들이 하도급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중대재해를 지속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다단계 하청구조와 위험의 외주화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10번째 죽음이 마지막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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