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크보빵 대박 노렸지만 독 됐다…'죽음의 공장' SPC 굴욕적 종말

이준현 기자 / 기사승인 : 2025-06-02 0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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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개 대박 뒤 숨겨진 죽음의 그림자
또다시 반복된 '말뿐인 사과'
27일 경기도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차량이 합동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SPC삼립이 출시 41일 만에 1000만개를 판매하며 역대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던 '크보빵'이 결국 생산 중단이라는 굴욕적 결과를 맞았다.

야구 열풍을 타고 승승장구하던 이 제품의 주요 생산기지가 바로 3년째 노동자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죽음의 공장'이었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 천만개 대박 뒤 숨겨진 죽음의 그림자

지난 3월 20일 화려하게 데뷔한 크보빵은 문자 그대로 '신화'를 썼다.

한국야구위원회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공식 라이선스를 받아 각 구단 마스코트와 인기 선수들의 얼굴이 담긴 띠부씰을 동봉한 이 제품은 출시 3일 만에 100만개, 41일 만에 누적 1000만개라는 경이적 판매량을 기록했다.

SPC삼립은 이를 '역대 최고 히트상품'이라고 자랑했고, 주가도 크보빵 열풍에 힘입어 5만7500원에서 6만950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공 뒤에는 참혹한 현실이 숨어 있었다. 크보빵의 주요 생산기지인 경기 시흥시 시화공장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SPC그룹이 3년째 계열사 공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를 반복하고 있다는 참혹한 현실이 드러났다.

지난 5월 19일 새벽 3시, 이 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30년 된 노후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2022년 평택 SPL 공장, 2023년 성남 샤니 공장에 이어 동일한 '끼임 사고'로 세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순간, 천만개 히트상품의 화려한 신화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고 현장의 작업 환경이었다. 윤활유 자동살포장비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노동자가 직접 기계 안쪽 깊숙이 몸을 넣어 윤활 작업을 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관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2인 1조 근무 원칙도 지켜지지 않은 채 홀로 작업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내 편의점 내 크보빵 매대가 텅 비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 '피 묻은 빵' 거부하는 소비자들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야구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조직적이었다.

사고 다음 날인 5월 20일, '크보빵에 반대하는 크보팬 일동'이라는 계정이 온라인에 등장하며 본격적인 불매운동에 돌입했다.

"화려한 콜라보 뒤에 감춰진 비극, 크보팬은 외면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들은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저항을 전개했다. 

 

단순히 제품만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 파트너인 KBO까지 압박하는 고도화된 소비자 운동을 펼친 것이다.
 

또 5월 3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국야구위원회(KBO) 건물 앞에서 야구팬들의 메시지 420여개를 전광판에 띄운 채 트럭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반복된 인명사고에도 이를 무시하고 SPC와 협업을 강행한 KBO를 규탄한다"며 협업 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선수들의 얼굴이 산재 기업의 이미지 세탁에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팬들의 선언은 소비자 의식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줬다.

더 이상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만으로 구매를 결정하지 않고, 기업의 윤리성까지 따지겠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였다.

나아가 온라인에서는 "피 묻은 빵을 사는 사람들 곱게 안 보일 것"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등장했고, SPC그룹 전 계열사 브랜드 목록이 공유되며 전면적인 불매운동으로 확산됐다.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파스쿠찌까지 SPC 브랜드 전체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사고가 난 기계 모습. (사진=연합뉴스)


◇ 또다시 반복된 '말뿐인 사과'

위기 상황에서 SPC의 대응은 2022년보다도 더욱 소극적이었다.

2022년에는 늦었지만 허영인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했던 반면, 이번에는 그룹 총수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실무진만 앞세워 형식적인 사과와 대책 발표로 일관한 것이다.

5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간담회에 나선 것은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였다. 허 회장은 지난해 9월 노조탄압 혐의로 5개월간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김 대표는 "시화공장 생산라인별로 매주 하루는 가동을 중단하고 설비 점검에 집중하겠다"며 "연속 근무를 줄이고 일부 라인에는 4조 3교대 시범 운영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관계기관 조사 완료 후 사고 설비 전면 철거 및 폐기, 노사합동 안전점검 실시, 안전보건 관리 인력 증원"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2022년 허 회장이 "3년간 1000억원 투자로 안전경영 시스템 강화"를 약속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도 안전시설 확충, 설비 자동화, 작업환경 개선 등 거의 동일한 대책들이 제시됐지만, 3년 후 똑같은 사고가 재발한 현실을 보면 이러한 약속들이 얼마나 공허했는지 알 수 있다.

더욱 문제는 허 회장의 완전한 부재였다.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총수가 위기 상황에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뒤로 숨는 모습은 진정성 있는 사과나 반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허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과거 사례를 볼 때 실질적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 최고 히트상품의 굴욕적 종말

결국 SPC삼립은 5월 29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치욕적인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SPC삼립은 "KBO와 협의해 크보빵 생산을 중단하고 안전 강화 활동과 신뢰 회복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출시 41일 만에 1000만개를 돌파하며 SPC 역사상 가장 빠른 성공을 거둔 제품이 불과 70일 만에 생산 중단이라는 굴욕을 당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영상 손실을 넘어 기업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가했다.

SPC삼립 주가는 크보빵 출시 이후 꾸준히 올라 4월 2일 최고가 6만9500원을 찍었지만, 사고 발생 당일인 지난 5월 19일 5만3000원선까지 추락했다.

IBK투자증권은 "반복되는 안전사고로 투자심리 회복이 요원한 상태"라며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내리고 목표주가를 20% 하향 조정했다.

이번 사태는 기업이 마케팅 성공에만 몰두하고 근본적인 안전관리를 소홀히 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1000만개 판매라는 경이적 성공 뒤에 숨겨진 '죽음의 공장'이라는 참혹한 진실이 드러나면서, SPC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제품으로 가장 큰 위기를 맞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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