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약과 정반대 행보…수요억제 정책 회귀
![]() |
강유정 대변인이 2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이재명 정부가 출범 후 첫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 6억원 상한제 등 초고강도 규제를 발표했으나, 대통령실이 "우리 대책이 아니다"라며 즉각 선을 그어 당정 간 소통 부재와 정책 혼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금융위원회는 27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통해 수도권과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등 전방위적 대출 규제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후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새 정부의 정책 조율 능력에 의문이 제기됐다.
◇ 금융위 발표 vs 대통령실 부인
이날 오전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 주재로 열린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는 서울 아파트값이 20주 연속 상승하며 6년 9개월 만에 최대폭을 기록하자 강력한 대응책이 나왔다.
핵심 내용은 수도권·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를 소득이나 주택 가격과 무관하게 6억원으로 일괄 제한하는 것이다.
2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추가 주택 구입을 위한 주담대는 전면 금지(LTV 0%)되고,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의 LTV도 기존 80%에서 70%로 강화됐다.
또한 주담대 이용 시 6개월 내 전입 의무를 부과해 지방 거주자의 수도권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고, 갭투자에 주로 활용되던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도 금지했다.
주담대 최장 만기는 30년 내로 일원화하고 전 금융권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목표를 기존 계획 대비 50% 수준으로 대폭 줄이기로 했다.
권 처장은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을 받아 조급하게 주택을 구입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빚을 레버리지로 삼아 주택을 구입하는 행태로 주택시장의 과열과 침체가 반복돼 왔다"며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초강력 대책 발표 직후 대통령실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강유정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기재부에서 나온 대책으로 알고 있는데, 일단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어 "부동산 대책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나 정책을 내놓은 바 없다"며 "다양한 대책이나 의견을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변인은 대통령실이 해당 내용을 보고받았느냐는 질문에도 "(국무회의 등 공식 회의에서 대통령에게) 특별히 보고가 있지 않았다. 오전 회의나 다른 회의 때도 그 부분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며 "금융위에서 일련의 흐름을 보고 만들어진 대책성"이라고 답했다.
거센 비판이 일자 대통령실은 1시간 30분 만에 대변인실 명의 공지를 통해 급히 진화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금융위의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해 알려드린다"며 "대통령실은 부처의 현안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각인된 혼란과 분열의 인상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 대선 공약과 정반대 행보…수요억제 정책 회귀
이번 사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이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논란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며 공급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약속했다.
지난 2월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한 이 대통령은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며 "부동산 정책은 손댈 때마다 문제가 된다. 가급적이면 손대지 않는 게 좋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은 공급 확대가 아닌 초고강도 대출 규제로 나타났다. 세금 규제 대신 금융 규제를 선택했지만, 결국 수요를 억제해 집값을 잡겠다는 기조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대책에는 문재인 정부 시절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과 '매물 잠김'을 유발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보유세나 양도세 등 세금 규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공급 대책 역시 일단 보류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과열된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지만, 현금 동원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6억원 대출 상한선으로 인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12억~13억원대)를 감안하면 최소 6억~7억원의 현금이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 |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대통령실 유체이탈 화법"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최수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같은날 논평에서 "강유정 대변인이 유체이탈 화법을 사용하고 방관자적 입장을 표명했다"며 "이재명 정권의 정책이 아니면 도대체 어느 정권의 정책이냐"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SNS를 통해 "주담대 6억 제한이라는 초고강도 대출규제 정책이 나왔는데 반나절도 채 지나기 전에 대통령실에서 '금융위 대책이고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는 입장이 나왔다"며 "황당하다"고 직격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실과 윤석열 금융위가 따로 있나"라며 "언제까지 관전자 모드로 국정을 구경하고 품평만 할 생각이냐"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윤석열 전 정부에서 지난해 7월 임명된 전임 정부 인사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1차관을 거쳐 금융위원장으로 발탁된 경제 관료 출신으로, 이재명 정부 출범 후에도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28일부터 즉시 시행한다고 발표했지만, 대통령실과 금융당국 간 소통 부재로 드러난 정책 조율 시스템의 문제는 향후 국정 운영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번 초강력 대출 규제로 단기적으로는 과열 양상이 진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금 부자와 일반 실수요자 간 양극화가 심화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