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라면 한개에 2000원?"…李 대통령 저격에 식품업계 긴장

이준현 기자 / 기사승인 : 2025-06-11 08: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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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공백기 노린 '묻지마 인상'
李 대통령 발언에 농심 주가 4.6% 급락
원가 상승 vs 기회주의적 편승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2차 태스크포스(TF)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라면 2000원" 발언이 식품업계를 강타했다.

이 대통령은 9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던진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는 질문이 식품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단순한 가격 확인이 아닌, 계엄 사태 이후 가격 급등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시장은 12.3 비상계엄 이후 정치적 공백기를 틈타 가격을 무더기 인상한 60여 개 업체들에게 던진 경고음으로 받아 들였다. 이 대통령 발언 직후 농심 주가가 4.6% 급락하기도 했다.

◇ 계엄 공백기 노린 '묻지마 인상'

통계청에 따르면 12.3 계엄 사태 이후 6개월간 가공식품 74개 품목 중 53개 품목의 가격이 올랐다.

전체의 72%에 해당하는 압도적 비율이다. 5% 이상 급등한 품목은 19개나 됐다.

초콜릿은 10.4%, 커피는 8.2% 치솟았다. 양념 소스와 식초, 젓갈은 7%를 넘어섰고 빵과 잼, 햄·베이컨도 각각 6% 가량 급등했다. 가격 인상에 나선 식품·외식업체는 60곳이 넘는다.

특히 동서식품, 롯데웰푸드, 오뚜기, 빙그레, 농심 등은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가격을 두 차례 이상 올렸다.

동서식품은 대선을 나흘 앞두고 '국민 커피' 맥심 모카골드 가격을 재차 인상해 6개월간 거의 20% 급등시켰다.

롯데웰푸드도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8개월 새 두 번 올려 '빼빼로 2000원 시대'를 열었다.

농심은 3월 신라면을 포함한 17개 브랜드를 평균 7.2% 인상했고, 오뚜기는 4월 27개 라면 유형 중 16개를 평균 7.5% 올렸다.

이로 인해 라면값은 1년 전보다 6% 넘게 상승해 전체 물가 상승률의 3배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삼양식품은 3월 불닭볶음면을 포함한 모든 제품의 가격을 연내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다른 업체들의 '원가 상승 불가피론'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같은 조건에서도 가격을 안 올릴 수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가격을 올린) 대부분 업체에서 지난해 매출원가 증감률이 매출액 증가율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 이는 원가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가격 인상을 단행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신라면이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 李 대통령 발언에 농심 주가 4.6% 급락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농심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지난 9일 기준 농심은 전일 대비 4.64% 내린 40만1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는 5.23%까지 떨어지며 시가총액 1000억원 이상이 하루 만에 증발했다.

반면 오뚜기는 0.75%, 삼양식품은 0.35% 상승하는 대조적 모습을 보였다.

시장이 농심을 정부 압박의 최우선 타깃으로 인식했다는 방증이다. 농심이 국내 라면시장 1위이자 '신라면'이라는 서민 음식의 대명사를 보유한 점이 작용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정부 압박으로 가격을 내린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주가에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3년 6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라면값 인하를 언급한 후 농심을 비롯한 라면업계는 9일 만에 가격 인하를 결정한 바 있다.

당시 농심은 신라면 가격을 50원, 새우깡을 100원 내렸는데 이는 2010년 이후 13년 만의 인하였다.

삼양식품과 오뚜기도 줄줄이 동참하며 정부 압박의 위력을 입증했다. 이 과정에서 농심은 200억원 상당의 이익을 포기해야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만큼 이번에는 압박 수위가 더 높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 원가 상승 vs 기회주의적 편승

식품업계는 원자재 가격 급등과 환율 상승, 인건비 증가를 가격 인상의 불가피한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농심과 오뚜기는 팜유, 전분, 스프 원료 등 수입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고환율을 공통으로 지목했다.

원화 가치는 2024년 미 달러 대비 12.5% 하락했고, 이 중 5.3%는 12월 계엄 혼란기에 집중됐다.

하지만 삼양식품의 가격 동결 선언은 이런 논리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같은 시장 환경에서 한 업체는 가격을 동결할 수 있는데 다른 업체들은 왜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물류 효율화와 원가 절감을 통해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가격 인상 시점이다. 정부의 시장 감시 기능이 마비된 계엄 사태 직후부터 줄줄이 인상이 시작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동조화된 행태를 보였다.

이를 두고 평상시 정부 견제로 억눌렀던 가격 인상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앞서 2010년 이명박 정부는 'MB 물가 관리 품목' 52개를 선정해 집중 관리했고, 라면을 포함한 생필품 가격을 직접 모니터링했다. 2023년 윤석열 정부도 추경호 부총리의 발언 하나로 라면업계 전체의 가격 인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정부 개입의 당위성이 아니라 기업들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있다.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서민 부담을 가중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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