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백업센터 표류가 참사 키워
![]() |
30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감식 관계자들이 4일차 현장 감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김교식 기자] 지난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647개 정부 시스템이 일제히 멈춰선 가운데, 이번 사태가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의 '정부판'이자 13년간 누적된 구조적 방치의 필연적 결과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민간 기업에 엄격한 이중화 의무를 강제하면서도, 정작 국가 핵심 전산망은 실시간 백업 체계 없이 방치했고, 재난 대비 백업센터 예산마저 대폭 삭감해 이번 참사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 2022년 카카오에는 엄격…정부는 '반쪽짜리' 이중화로 방치
이번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는 3년 전 카카오 먹통 사태와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
2022년 10월 경기 판교 SK C&C 데이터센터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카카오톡을 비롯한 서비스 대부분이 나흘간 마비됐다. 당시 정부와 대통령실은 카카오를 향해 서버 이중화 미비를 강하게 질타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국회는 신속하게 데이터센터 이중화 및 재난 대응 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는 '카카오 먹통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카카오는 먹통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후속 조치로 5000억원대 보상안도 발표했다.
반면 민간 기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정부는 정작 국가 시스템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이용석 행안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은 27일 브리핑에서 "재난복구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만, 큰 규모가 아니라 필요 최소한의 규모"라고 인정했다.
실제로 국정원은 서버 단위의 데이터 백업만 일부 갖추고 있었을 뿐, 화재나 지진 같은 광역 재난 발생 시 다른 데이터센터에서 즉시 운영을 재개할 수 있는 실시간 '클라우드 재난복구' 시스템은 사실상 부재했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보관하는 것과,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 네트워크, 컴퓨팅 자원 등 운영 환경 전체를 즉각 복제해 가동하는 것의 근본적 차이를 외면한 결과다.
정부가 카카오에 요구했던 실시간 이중화 시스템은 정부 스스로 "올해 막 시범사업 하는 단계"라고 설명할 정도로 걸음마 수준이었다. 이는 정부가 민간에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지만, 정작 스스로를 관리하는 데에는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
27일 밤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소화수조로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13년 표류한 공주 백업센터…예산 251억→16억 대폭 삭감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해법은 이미 13년 전부터 존재했다. 바로 '쌍둥이 백업센터'로 불리는 공주 센터 구축 사업이다.
2008년 처음 계획이 수립된 이 사업은 전쟁, 재난, 전자기파 공격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국가 데이터와 운영 시스템을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해 설계됐다.
그러나 이 핵심 국가 안보 시설은 예산 삭감과 계약 유찰을 반복하며 표류했고, 2019년에야 간신히 착공에 들어갔다. 사업 시작 15년 만인 2023년 5월에 건물 공사를 마쳤지만, 완공된 건물은 시스템이 없는 텅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특히 2024년, 공주 센터 전산 환경 구축을 위해 251억50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으나, 정부는 2023년 11월 행정망 장애 사태를 핑계로 마스터플랜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2024년 8월까지 이 예산을 단 한 푼도 집행하지 않았다.
'집행 부진'은 2025년도 예산을 235억원이나 삭감해 16억1400만원만 남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025년도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사업이 추가적으로 지연되지 않도록 집행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이미 예산은 93%가 삭감된 뒤였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전쟁이나 대형 재난에 대비해 추진한 데이터센터가 10년 넘게 지연된 것은 문제"라며 "조속히 국가정보자원 백업센터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공주 센터가 단순한 백업 시설이 아니라 전자기파 공격까지 대비한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 13년간의 표류는 단순한 행정 실패를 넘어 국가 안보에 심각한 공백을 초래한 행위다.
전문가들은 공주 센터가 정상 가동됐다면 대전 센터가 전소됐더라도 3시간 내 복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화재로 중단된 정부 전산망에 대한 복구 작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30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민센터에 IC주민등록증,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 등 일부 민원사무 중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
◇ 닷새째 복구율 14.1%…더딘 복구 속도
정부의 공식 복구 계획은 화재로 전소된 96개 핵심 시스템을 대구 국정원 센터에 재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총 4주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30일 오후 2시 기준, 전체 647개 시스템 중 91개 서비스만 정상화돼 복구율은 14.1%에 그쳤다.
정부24와 우체국 금융서비스 등 주요 대국민 서비스는 정상 운영을 재개했으나, 국민신문고를 비롯한 상당수 시스템은 여전히 마비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비상대책회의에서 "신속한 정부 시스템의 복구와 가동, 국민 불편의 최소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2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허리를 숙이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문제 해결을 위한 초당적 협력 대신 서로를 비난하는 공방에 몰두하며 국민적 분노를 키우고 있다.
알파경제 김교식 기자(ntaro@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