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구계 거장 장윤창 교수 별세 배구인들 추모…배구협회는 공로패 수여

박병성 기자 / 기사승인 : 2025-06-02 12: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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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 4강 신화의 주역, 65세 일기로 위암 투병 끝에 영면
사진 = 고려증권 시절 주포로 활약했던 장윤창(왼쪽) [연합뉴스 자료 사진]

 

[알파경제=박병성 기자] 한국 배구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돌고래'라 불리던 장윤창 경기대 교수가 30일 오랜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5세.

 

배구계에 따르면 장윤창 교수는 이날 오전 지병인 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은퇴 후에도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했던 그였지만, 병마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장윤창 교수는 1980~90년대 초반 한국 남자배구 전성기를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특히 1978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배구 역사상 최고 성적인 4강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당시 인창고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 주전 아포짓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이후 그는 1978년 방콕,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장윤창 교수는 이후 김세진, 박철우, 임동혁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아포짓 거포 계보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돌고래'라는 별명에 걸맞게 폭발적인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후위공격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경기대 재학 시절에는 한국 남자배구 역사상 처음으로 스카이 서브(스파이크 서브)를 선보인 혁신적인 선수이기도 했다.

 

V리그 전신인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는 소속팀 고려증권을 초대 챔피언을 포함해 총 6회 우승으로 이끌며 슈퍼스타로 군림했다. 이는 2위 팀(현대자동차써비스 5회)보다 많은 최다 우승 기록이다.

 

장윤창 교수는 1995년 슈퍼리그 개칭 직전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며 동시대 선수들보다 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은퇴 후에는 대한배구협회 경기감독관과 기술이사를 거쳐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의 아들 장민국은 아버지와 달리 농구선수의 길을 걸었으며, 최근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했다.

 

장윤창 교수의 별세 소식에 김세진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본부장은 "한동안 몸이 좋아지셨었고 다시 현장에서 일하는 꿈을 꾸시기도 했는데 갑자기 적신호가 왔다"며 "한국 배구의 한 시대를 풍미하신 레전드고, 내 인생의 길잡이 같은 분이다"라고 애통함을 표했다.

 

신영철 OK저축은행 감독도 "한국 배구의 큰 별이 졌다"며 "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선수 시절 술 한잔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자기 관리를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국 배구 역사에 남을 대표적인 선수"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알파경제 박병성 기자(star@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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