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SK텔레콤, 위약금 면제 수용했지만 왜 14일까지?…출혈 최소화 노렸나

이준현 기자 / 기사승인 : 2025-07-07 08: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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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서 '가해자'로...70일 만에 뒤바뀐 정부 판단
플립7 출시·단통법 폐지 앞두고...SK텔레콤의 전략적 후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7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열린 유심 정보 유출 관련 일일 브리핑에 참석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4일 SK텔레콤 해킹 사태를 '명백한 과실'로 최종 판단하면서, 초기 '피해자'로 봤던 정부 입장이 70일 만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SK텔레콤은 즉시 위약금 면제를 수용했지만, 면제 기간을 14일까지로 제한하면서 단통법 폐지와 갤럭시 Z 폴드·플립7 출시 직전 가입자 이탈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후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안전한 통신서비스 제공 의무를 다하지 못해"

류제명 과기정통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SK텔레콤의 과실이 발견된 점과 계약상 주된 의무인 안전한 통신서비스 제공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고려해 위약금 면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태 초기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이 "문제를 일으킨 건 SK텔레콤이 아니라 해커다. SK텔레콤도 굉장한 피해자"라고 했던 발언과 정반대의 결론이다.

특히 정부는 SK텔레콤이 2022년 2월 악성코드 감염 서버를 발견하고도 당국 신고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핵심 과실로 지목했다.

조사 결과 SK텔레콤은 해커들의 침투를 2021년 8월부터 허용했다. 이는 당초 발표된 2022년 6월보다 무려 10개월 앞선 시점이다.

HSS 관리서버 계정정보를 평문으로 저장하고, 유심 인증키를 암호화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보안 수칙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SK텔레콤 해킹 사태 관련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 "회사의 귀책 사유로 피해자 손해 없어야"

정부 입장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대통령은 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계약 해지 과정에서 회사의 귀책사유로 피해자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국민 피해에 대한 감정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고, 법률 해석을 피해자 쪽에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위약금 관련 해지 과정에서 국민 이익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대통령의 명확한 의중 표명 이후 과기정통부의 강경 대응이 본격화된 것이다.

정치권의 압박도 거셌다. 더불어민주당 이훈기 의원은 "통신 1위 기업이 그렇게 무책임하냐"며 "위약금 비용이 생각보다 적게 든다"고 비판했고, 국회 과방위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위약금 면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반면 이용자 피해 최소화를 주문한 대통령 언급이 SK텔레콤 해킹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냐는 물음에 류제명 차관은 "면밀한 법률 검토 과정 결과"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 위약금 면제 수용한 SKT…업계 1위 지위 흔들릴까

정부의 강경 대응은 SK텔레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류제명 차관은 "SK텔레콤이 정부 방침에 반대되는 입장을 표명한다면 전기통신사업법상 시정명령을 요구하고, 이행이 안 되면 기간통신사업자 등록 취소 등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정부 발표 직후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조사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사이버 침해사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객과 사회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회사가 내놓은 보상안은 총 1조2000억원 규모의 대형 패키지였다. 4월 18일 이전 약정 고객 중 7월 14일까지 해지하는 고객에게 위약금을 면제하고, 전 고객 2400만명에게 8월 통신요금 50% 할인과 연말까지 매월 데이터 50GB를 추가 제공한다.

향후 5년간 7천억원을 정보보호에 투자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다만, 위약금 면제 기간을 14일까지로 설정한 것은 전략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22일 단통법 폐지와 삼성 갤럭시 Z 폴드·플립7 출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가입자 이탈을 조기에 차단하고 출혈을 최소화하려는 수순으로 해석된다는 평가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가 25일 서울 중구 SKT타워 수펙스홀에서 SK텔레콤 이용자 유심(USIM) 정보가 해커 공격으로 유출된 것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SK텔레콤 독주 체제 균열이 생기나

SK텔레콤의 시장 지위는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해킹 사고 이후 60만명의 가입자가 이탈했으며, 20년간 유지해온 40% 시장점유율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다. 4월 한 달 동안만 23만7000명이 타사로 이동했다. 이는 전월 대비 87% 증가한 수치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국회 청문회에서 "위약금 면제 시 3년간 최대 7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직접 위약금 면제만 2500억원, 유심 무상 교체 비용 1700억원, 해킹 공개 후 시가총액 손실 8700억원 등이다. 여기에 가입자 이탈로 인한 매출 감소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주식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위약금 면제 발표 직후 주가는 5만4400원으로 5.56%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1조원대 보상 부담과 향후 가입자 이탈 가속화 우려를 반영해 매도세를 쏟아냈다.

반면 경쟁사들은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다. KT는 19만7000명, LG유플러스는 15만9000명의 신규 가입자를 확보했다.

특히 KT는 이동통신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SK텔레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SK텔레콤의 브랜드 가치는 890.1점에서 850.1점으로 하락한 반면, KT는 852.6점에서 872.9점으로 상승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통신업계 판도 변화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의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5대 3대 2' 구조에서 '4대 3대 3'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22일 '단통법' 폐지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위약금 면제로 가입자 이동 장벽이 낮아진 상황에서 보조금 경쟁까지 자유화되면 통신시장의 대격변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10년 넘게 SK텔레콤을 이용한 한 가입자는 "어차피 약정이 끝난 상황"이라며 "22일 단통법 폐지 후 더 좋은 조건으로 통신사 이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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