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스트라이크와 랜딩기어 미작동 의문
"사고 직전 8곳 오가며 13차례 운항"…과도한 일정이 화근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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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소방구급대원이 사고 여객기 내부를 수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29일 오전 9시 3분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로 탑승객과 승무원 181명 중 179명이 숨지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태국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7C2216편은 착륙 과정에서 연이은 충격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
◇ 최악의 여객기 참사
31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참사는 착륙 과정에서 발생한 세 차례의 치명적 충격이 겹치며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랜딩기어 없이 기체 바닥을 활주로에 대고 착륙하는 '동체착륙' 과정의 마찰 충격, 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과의 충돌, 그리고 이어진 외벽 충돌과 폭발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활주로 끝 외벽 앞에 설치된 로컬라이저라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치명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영국 공군 출신 항공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30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활주로 끝에서 200m도 채 안 되는 곳에 있는 구조물은 원래 장애물이 없어야 하는 곳"이라며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탈했을 때 크게 손상되지 않도록 쉽게 부러지거나 접히는 형태로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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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배 제주항공 대표가 2024년 12월 29일 무안 제주항공 참사 관련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서 사고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버드스트라이크와 랜딩기어 미작동 의문
사고 당일 오전 8시 57분 관제탑은 기장에게 "새 떼와 충돌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2분 후 기장은 구조 신호인 '메이데이'를 보냈다.
무안공항은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과 인접해 철새 도래지가 있다.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무안공항의 버드스트라이크 발생 건수는 총 10건으로, 전체 운항 1만1004편 대비 0.09%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류 충돌과 랜딩기어 고장의 인과관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랜딩기어는 엔진이 꺼져도 유압식 수동 작동이 가능하며, 수동 작동에 걸리는 시간은 20~30초 정도라는 설명이다.
국토교통부도 지난 29일 브리핑을 통해 "엔진 고장과 랜딩기어 고장은 일반적으로 상호 연동되는 경우가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하루만인 30일 오전 동일 기종 제주항공 7C101편에서도 랜딩기어 고장이 발생했다.
김포공항을 이륙한 직후 탑승객 161명을 태운 채 회항했다. 161명의 승객 중 21명은 안전 우려를 이유로 탑승을 포기했다.
결함이 발견된 항공기는 보잉 B737-800 기종으로, 전날 사고 기종과 동일하다. 제주항공은 보유 항공기 41대 중 39대를 이 기종으로 운영하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회항은 안전 운항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라며 "자발적으로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에게는 전액 환불을 하고, 탑승을 계속한 승객들에게는 지연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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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석 애경 총괄부회장(왼쪽부터)과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가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 유가족 대기실을 방문해 사과한 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사고 직전 8곳 오가며 13차례 운항"…과도한 일정이 화근됐나
사고기는 사고 직전 48시간 동안 공항 8곳을 오가며 13차례 운항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행 데이터를 추적하는 항공전문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기록된 사고기(등록번호 HL8088) 운항 이력을 살펴보면 짧게는 38분에서 길게는 5시간 46분에 달하는 비행을 반복했다.
공항별 이착륙 준비 시간도 짧았다. 항공기가 착륙 후 승객 하기, 기체 점검, 급유, 청소, 승객 탑승 등을 마치고 다시 이륙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부분 1~2시간에 불과했다.
승객 하차와 탑승에만 통상 30분가량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정비에 투입된 시간은 30분~1시간 30분 정도로 추정된다.
제주항공의 이 같은 빠듯한 일정은 국토교통부가 정한 '이륙 정비 최소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 결과로 보인다.
사고기와 같은 B737 기종의 이륙 정비 최소 시간은 28분. 업계에서는 이를 '수익 극대화 시간'이라고 부른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단거리 비행이 많은 경우 기체 피로가 더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제주항공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출발·도착 전 점검과 24시간 점검을 완료했다"며 "기체 이상 징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의 여객기 월평균 가동 시간은 올해 3분기 기준 418시간으로, 대한항공(355시간)보다 18% 많았다.
더욱이 제주항공은 자체 항공정비(MRO)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국내 항공사 중 자체 MRO 사업을 운영하는 곳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뿐이다.
지난해 발생한 저비용항공사 안전 장애 총 14건 중 8건은 티웨이항공, 3건은 제주항공에서 발생했다.
업계는 이러한 안전 장애가 항공정비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과 관련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사고기는 2022년 11월 일본 간사이공항 이륙 직후 조류 충돌 의심 사례로 회항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본인을 제주항공 직원이라고 밝힌 작성자가 "본사가 엔진 고장을 새 떼 충돌로 은폐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다만,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회항 전력' 질문에 "전혀 관계 없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비행기록장치와 음성기록장치를 수거해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관계자는 "사고 원인 규명에 짧아도 6개월, 길게는 3년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기체 문제, 조종 절차 문제, 외부요인 문제 등 복합적 사고 요인들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