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약 사태 이어 '약국 입김' 논란 재점화
약사회 '독점' vs 소비자 '선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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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 매장.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다이소가 건강기능식품(건기식) 판매를 시작한 지 닷새 만에 일양약품이 철수를 결정했다. 약사들의 집단 반발이 거세지자 대웅제약과 종근당건강도 판매 중단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염색약 '세븐에이트' 판매 중단에 이어 또다시 약사회의 압박으로 제품이 퇴출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약사회의 시장 영향력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 다이소 건기식 '가격 파괴'에 약사들 불매운동
3일 업계에 따르면 다이소는 지난달 24일부터 전국 200여개 매장에서 대웅제약, 일양약품, 종근당건강의 건기식 판매를 시작했다.
이들 제품은 다이소 균일가 정책에 따라 3000원~5000원에 판매됐다. 약국에서 2만~3만원대에 판매되던 한 달분이 다이소에서는 최대 6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해졌다.
대웅제약이 루테인, 오메가3, 멀티비타민 미네랄 등 26품목으로 가장 많고, 일양약품은 비타민C 츄어블정, 쏘팔메토 아연 등 9품목을 공급했다.
종근당건강은 락토핏과 루테인지아잔틴 2품목을 3~4월경 출시할 계획이었다.
제약사들이 다이소에서 건기식을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이유로는 포장 간소화와 마케팅 비용 절감을 꼽았다.
기존 건기식이 3~6개월분 단위로 판매되는 것과 달리, 다이소에서는 1개월분 소포장 형태로 제공했다. 대량 생산과 포장 간소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은 "가격 부담이 적어 앞으로 약국 대신 간편하게 구매할 것 같다"며 대체로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약사들 사이에서는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와 함께 강경한 목소리가 나왔다.
약사 커뮤니티에서는 "대웅제약 전문약 주문한 것 1000만원어치 반품했다", "보이콧해야겠다" 등의 불매운동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루테인이나 오메가3 같은 인기 품목이 다이소에 입점하면서 약사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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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제약 염색약 세븐에이트. (사진=동성제약 홈페이지 캡처) |
◇ 염색약 사태 이어 '약국 입김' 논란 재점화
결국 일양약품은 판매 개시 닷새 만인 28일 다이소를 통해 출시한 건기식 판매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대웅제약과 종근당건강도 철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제약과 종근당건강은 이와 관련해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양약품의 갑작스러운 판매 중단이 약사들의 반발 확산에 부담을 느낀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한약사회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유명 제약사가 수십 년간 건강기능식품을 약국에 유통하면서 쌓아온 신뢰를 악용해 약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생활용품점으로 공급하고 있는 것처럼 마케팅을 펼치는 데 대해 강력 규탄한다"며 "신속히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6월 벌어진 다이소 염색약 판매 중단 사례와 유사한 전개를 보인다.
당시 동성제약의 염색약 '세븐에이트'가 다이소에서 약국 공급가보다 3000원 저렴한 5000원에 판매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대한약사회가 중재에 나섰고, 동성제약은 사과문을 제출하며 다이소 출하를 중단했다.
두 사례 모두 약국가의 집단 반발로 인해 다른 유통 채널로의 확장이 무산된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약국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약사들의 이러한 행동이 '집단이기주의'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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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 약사회 '독점' vs 소비자 '선택권'
약사들은 건기식 구매 과정에서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건기식 시장 구조를 들여다보면 약국의 주장이 시장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제약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6조원 상당인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온라인 유통채널을 통한 매출 비중이 70%에 달하는 반면, 약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건기식 판매가 약국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 안팎에 그친다.
또한 건기식은 법적으로 '약'이 아닌 '식품'의 일종이다. 그동안 건기식이 약국을 통해 주로 판매돼 온 것은 이를 만드는 곳이 제약회사들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약국이 제약회사들과 긴밀하게 연결된 일종의 유통 채널 역할을 해왔던 만큼, 건기식도 약국을 통해 시장을 구축해 왔을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약사 유튜버 고상온씨는 자신의 채널 '약사가 들려주는 약 이야기'를 통해 '다이소 영양제 정말 살 만한가? 성분 배합, 함량 등을 약사인 제가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분석 영상을 올렸다.
그는 "저라면 (다이소 영양제를) 구매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마그네슘은 돈값을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약사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다이소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다"며 "이번 기회에 광고로 돌아가는 영양제 시장이 아닌, 진짜 좋은 제품이 잘 유통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 강경 약사들의 목소리가 약사 직종 전체의 입장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약사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는 모습이다.
특히 일부 제약업체의 다이소 건기식 판매 중단으로 약사들을 향한 소비자들의 반감도 커진 상황이다.
현재 약국 외 다른 유통 채널에서의 건기식 판매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선택권을 존중하면서도 건강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건기식 시장이 발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