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가상자산 투자 확대, 은행권 관심 고조
업비트 중징계, 케이뱅크 제휴 관계 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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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뱅크 사옥 전경. (사진=케이뱅크)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그동안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와의 제휴로 성장했던 케이뱅크가 법인 가상자산 투자 허용이라는 시장 변화와 업비트 중징계라는 이중고에 놓였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가상자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눈독을 들이면서 케이뱅크의 경쟁 환경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 '업비트'로 급성장한 케이뱅크
케이뱅크는 2020년 6월 업비트와 맺은 제휴를 통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케이뱅크의 고객 수는 2020년 말 219만 명에서 2021년 3분기 말 660만 명으로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3배 급증했다. 지난해 3분기 말에는 1205만 명까지 늘어났다.
수신 잔액도 2020년 말 3조8000억 원에서 2021년 3분기 말 12조3100억 원으로 3배 이상(8조5100억 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여신 잔액 증가분(3조1900억 원)과 비교하면 수신 유입이 두드러졌다.
업비트 제휴 다음 해인 2021년 말, 케이뱅크는 출범 후 첫 연간 누적 흑자도 달성했다.
그러나 이 급성장의 이면에는 업비트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케이뱅크 수신 잔액(22조 원) 중 업비트 예치금(3조2000억 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5%에 달했다.
다른 은행들의 거래소 예치금 비중이 1% 미만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6월부터 지난해 7월 말까지 케이뱅크의 가상자산사업자 이용자 예치금은 3조7331억 원으로, 농협은행(빗썸, 1조399억 원), 카카오뱅크(코인원, 1451억 원), 신한은행(코빗, 729억 원), 전북은행(고팍스, 117억 원) 등 다른 은행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업비트가 케이뱅크와 거래를 단절할 경우 케이뱅크 뱅크런(대량자금인출) 사태가 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우형 케이뱅크 은행장은 같은 달 열린 IPO 기자간담회에서 "업비트 예치금은 고유동성의 안정적인 운영처인 MMF, 국공채 등에만 정확하게 매칭시켜 운영하기 때문에 뱅크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하반기 들어 가상자산 거래대금이 급증하며 업비트의 예치금 또한 크게 늘었고, 올해 1월 기준 케이뱅크에 업비트 예치금은 7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치금이 대출 재원으로 직접 활용되지는 않지만, 업비트 효과가 케이뱅크의 활성계좌 증가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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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자산위원회 위원장인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제1차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법인 가상자산 투자 확대, 은행권 관심 고조
금융위원회는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2분기부터 비영리법인 중 지정기부금단체와 대학교 등에 법인 실명계좌 발급이 허용된다. 하반기에는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 중 금융사를 제외한 상장사와 전문투자자로 등록한 법인도 시범적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해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수탁고는 지난해 6월 기준 13조8000억 원으로, 2022년 12월 1조6000억 원에서 불과 1년 6개월 만에 8배 이상 증가했다. 법인 투자까지 허용되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은 가상자산 관련 사업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빗썸의 원화 입출금 제휴 서비스를 NH농협은행으로부터 가져왔다. 3월 24일부터는 KB국민은행이 빗썸의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빗썸의 KB국민은행 전환 소식이 알려진 후, KB국민은행의 요구불예금 계좌 신규 개설은 3~4배까지 증가했다.
우리은행도 가상자산 시장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상자산 거래소 등과 협업해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계좌 개설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우리은행이 업비트와의 제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리은행은 이미 자체 블록체인 기반 대체불가토큰(NFT) 지갑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가상자산 수탁 사업이나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8년부터 코빗과 제휴를 맺고 있으며, 최근에는 법인·기관 고객 대상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 16명 규모의 TF팀을 신설했다.
하나은행도 지난 14일부터 업비트에 인증서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접점을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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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비트. (사진=두나무) |
◇ 업비트 중징계, 케이뱅크 제휴 관계 변수로
케이뱅크의 상황은 업비트의 중징계로 더욱 복잡해졌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최근 특정금융거래법(특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와 소속 임직원들에 대해 중징계를 확정했다.
업비트에 대해서는 신규 고객 가상자산 이전(입고·출고)을 금지하는 '영업 일부 정지 3개월'을 통보했다.
해당 조치로 3월 7일부터 6월 6일까지 영업정지 기간 중 신규 가입 고객의 가상자산 이전이 제한된다. 기존 고객은 제한 없이 거래할 수 있으며, 신규 고객도 외부로의 가상자산 이전 외에 가상자산 매매·교환이나 입출금은 가능하다.
업비트의 제재로 케이뱅크의 수신 규모나 고객 유입에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제재 조치는 이전부터 예상했던 내용이고, 기존 또는 신규 고객의 가상자산 거래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고객 유입이나 수신 잔액에 대한 실질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뱅크와 업비트의 제휴 계약은 올해 10월 만료된다. 이에 따라 업비트가 새로운 은행으로 파트너를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업비트의 입장에서는 법인 투자 허용이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법인 고객군을 많이 확보한 시중은행과의 제휴도 검토할 수 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업비트와 케이뱅크가 제휴를 맺었던 5년 전과 지금의 가상자산 시장 환경은 상당히 달라졌다"며 "업비트 입장에서는 케이뱅크와의 제휴를 계속 유지할지 여러 요소를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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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케이뱅크) |
◇ 케이뱅크, 법인계좌 시장 선점 나서
케이뱅크는 가상자산 법인계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케이뱅크는 법인 가상자산 시장 공략을 위해 '기업뱅킹 TF(태스크포스)팀' 구성을 검토 중이다. 법인 대상 비대면 금융 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업비트와 함께 법인 연동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케이뱅크는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지방검찰청, 세무서, 지자체 등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실명 법인 계좌 발급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를 통해 몰수·추징된 가상자산이 국고로 환수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가상자산 법인계좌를 개설한 기관은 50여 곳에 달하며, 올 상반기 중 100곳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뱅크는 안전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인에 외환·여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자금세탁 위험이 커질 수 있지만, 케이뱅크의 법인 뱅킹 서비스는 예금·이체 등 기본 금융 서비스에 한정돼 있어 자금세탁에 악용될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은 국내외 가상화폐 시세 차이(김치 프리미엄)를 이용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금융당국으로부터 9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